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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현의 양망일기 ⑤ 와누아투(瓦努阿圖), 바누아투

기사승인 [579호] 2018.07.16  10:3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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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재>

[현대해양]

1 “하선장. 주말에 알바 한 탕 뛸란가? 배 한 척 감천항부두에 접안시키고, 그날 저녁이나 이튿날 다시 출항시켜주소. 소주 값 두둑히 줄게.”

선박대리점을 운영하는 선배로부터 걸려온 전화다. 별 일도 없지 싶어 20만원에 ‘낙찰’을 봤다. 수락했더니 그제야 슬그머니 실상을 털어놓는데, 졸지에 혹 하나 단 꼴이 되어버렸다.

남태평양에서 조업을 마치고 하역과 중간 보급을 위해 부산항에 입항하는 중국 참치어선이라는 것 까지는 그렇거니 했다.

선원하나가 며칠 전 항해 중에 심장마비로 운명했단다. 시신인도 절차가 있고, 몇십 톤 참치하역에, 외국선원들이 도 망칠 우려도 있어 경비도 세워야 하는데, 선장이 영어를 아예 한 마디도 못한단다. 해서 어찌어찌 배만 끌어다 대주면 중국어에 능통한 직원을 보내 일처리를 하겠다는 것.

여하튼 닻을 뽑아올리고 타잡이에 엔진도 조절하며 도선사의 오더대로 배를 운용해야하는 속칭 ‘따까리 임시선장’ 노릇이다. 칼국수 장사 수제비 장사 못할까.

“오케이 한번 해보리다.”

2 금요일 오전에 부산 남외항 N3수역 묘박지에 닻을 놓고 대기 중인 배에 올랐다. 세관 간이부두에서 통선 ‘제일호’를 타고 영도대교 아래를 지나 묘박지로 나간다. 올라야 할 배까지는 반시간 정도 걸린다. 바닷바람이 시원했다. 고개를 돌려 부산항을 돌아보며 뜬금없이 두 가지 생각을 떠올린다.

뱃놈들이 대개 술이 센 이유 중 하나가 바닷바람에 농도가 낮은 적당한 오존(O3)이 섞여있어 머리를 맑게 한다는 것. 또 하나, 세계 유수의 미항(美港)들이 언급되지만, 내가 볼 때 부산항도 결코 꿀리지(?) 않는다. 바다와 강과 산이 어우러진 절묘한 지형에 오색찬란한 도심의 불빛이 뒤덮은 야경은 감탄이 절로 나오는 그림이다. 부산항대교와 광안대교를 위시한 거대한 교각들의 불빛은 거의 매직수준이다.

통선 선장 영감님은 휴대폰에 깔린 선박 위치추적 앱으로 수 십 척 닻을 놓고 떠있는 배들 중에서 귀신같이 ‘Q호’를 찾아냈다. 가까이 가자 흉물스런 배의 모습이 기가 찰 지경이다. 상부 구조물은 원래는 흰색 페인트였지 싶은데 그을음이 쓸어 거의 회색에 가깝다. 칠이 벗겨져 녹물이 줄줄 흐르고, 선저부분에는 따개비 같은 패류껍질들이 붙어있다.

좋게 봐서 해적선이고 아니면 영락없는 유령선 꼴에 겉만 보면 곧 고철로 팔아야할 똥배 ‘꼬라지’다. 사이렌을 울려도 아무도 뱃전에 나타나지 않는다. 갑판에는 때에 쩐 누런 개 두 마리가 뛰어올라와 이쪽을 보고 짖어댄다.

한참 지나서 빡빡머리에 반바지 차림의 중국인이 브릿지창을 열고 얼굴을 내민다. 선장인 모양이다. 뉘앙스로 보아 분명히 욕설인 듯싶은 고함을 지르고, 긴급 벨이라도 울렸는지 열 명 정도 선원들이 갑판으로 올라왔다. 어라, 모두금색 송충이 몇 마리가 우글거리듯 땋아 올린 ‘레게 머리’의 흑인들이다.

사다리를 걸어달라는 손짓에 한 친구가 두 손을 교차시켜 X자 표시를 하는 걸 보니 도선사용 줄사다리도 없는 모양이다. 어쩌냐 할 수 없지, 파도의 장단에 맞춰 통선 선수가 솟아오를 때 배 현측으로 뛰어 오르는 수 밖에. 한 흑인 친구가 덥석 손을 잡아 당겨 올려 준다.

브릿지로 들어서자 선장은 중국어로 쏼라거리며 악수를 청하더니 담배부터 권한다. 세상에나, ‘STOP’과 ‘START’도 못 알아듣는 ‘캡틴’이라니. 손짓발짓으로, 거기다 수첩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닻을 감고 엔진을 올리라는 신호를 전한다. 둘의 소통은 오로지 선박운항에 관한 것 뿐 이기에 눈치코치로 때려잡아도 뜻은 통한다.

“부산 VTS(해상 교통관제센터), 여기는 ‘Q호’, 감도 있습니까?”

대리점에서 곧 입항 한다는 연락을 받았는데 몇 번을 불러도 대답도 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가 VHF(초단파 무선통신기)로 먼저 호출하자 관제사는 반가워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영도에 있는 조도정상에서 컴퓨터화면과 통신으로 하루 수 백 척의 입출항을 관리하는 그들도 안전사고를 막고자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한다.

“11시 현재 양묘(닻 감아 올리기)종료, 파일럿 스테이션(도선사 승선위치)으로 이동합니다. 오버.”

“양지 했습니다. 부두 접안 후 도착보고 해주시고, 지금 러시아 화물선 한척 출항중이니 좌현 대 좌현으로 교차하시고안전 운항 하세요. 아웃.”

산 넘어 산이다. 조타륜의 회전 타각을 가리키는 ‘타각지시기’까지 먹통이다. 감으로 타각을 조정하는 수밖에 없다. 탑승용 사다리가 없으니 도선사도 목숨을 건 곡예를 부리듯 물벼락을 뒤집어쓰고 배로 뛰어 올랐다. 바다에서, 배에서는 눈 닦고 봐도 쉬운 일이란 없다.

선장은 꿔다 논 보릿자루처럼 앉았더니 이 경황에 주방에서 들고 온 국수로 식사를 한다. 엔진은 ‘CPP(브릿지에서 원격조정)시스템’으로 도선사의 오더에 따라 중국선장이 밥을 먹으면서도 눈치껏 조절했다. 언어소통을 떠나 명색이 선장이랍시고 항내에서 손발이 그런대로 맞았다.

유도선 두 척을 선수선미에 연결해 밀어붙여 접안하면서모두 진담깨나 흘렸다. 이무류(안개)가 옅게 깔리고 출입항 배들이 많은데다 조류가 제법 셌다. ‘무링라인(계류용밧줄)’을 걸 때 영어로 소리치니 의외로 흑인 선원들이 오더를 잘 알아먹는다. 죄다 슬리퍼에 맨손이다.

선장이 백지에 한문으로 글자를 쓰고 내게 보여주며 큰 소리로 떠들어댄다.

‘瓦努阿圖’. 와누아투

그랬구나. 선장, 기관장을 위시해 사관 6명을 제외한 하급선원 23명 모두가 바누아투(Vanuatu) 국적이었다. 선배와 대리점 직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이어 시신인도를 위해 호송차가 도착했다. 어창에서 들어 올린, 흰색 천으로 둘러씌운 나무로 짠 관에 코끝이 찡하다. 가난을 떨치려 외국적 배에 올랐다가 운명을 접은 한 선원에게 모자를 벗고 조의를 표한다.

항운노조가 일체를 진행하는 하역작업이 몇 시간 걸리지않을 것 같고, 마땅히 갈 곳도 없기에 오후 늦게 예정된 항때까지 배에 눌러 앉았다.

배에서 준비 작업을 지휘하던, 갑판장 격 ‘오야지’로 보이는 격투기 선수처럼 생긴 선원 하나가 내 곁에 섰다. 이 친구에게 담배를 권하며 말문이 터졌는데 브로큰 잉글리쉬지만 알아들을 만 했다.


3 이름을 물으니 ‘마타스 하우릴리우 카리누아마타…….’ 어쩌고 따라 부르기도 힘들 긴 발음을 늘어놓더니 그냥 애칭 같은 영어이름 ‘사이먼(Simon)’으로 불러달란다. 나이는 서른다섯이라네. 바누아투. 남태평양 호주와 피지사이의 섬나라. 30만도 못되는 되는 인구에 코코넛과 바나나 농사 말고는 얄팍한 관광업 외에 마땅한 수입원도 없어 최빈국으로 꼽힌다.

돈 없고 굶는 ‘집구석’이 있다면 의무적으로 이웃들이 먹이고 재우는 풍습이 있고, 찢어지는 가난에도 일본 대지진 때 복구성금을 전달할 만큼 넉넉한 인성을 가진 국민들이다. 지금의 ‘부탄’처럼 대외비교 경제력을 제외하고 순수한 ‘체감지수’ 만을 조사한 행복지수가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는 나라다.

한국인들은 기독교 선교활동을 하는 분들 포함 몇 십 명이 체류하고 있단다. 사회간접자본과 부동산에 중국자본이 물밀 듯이 파헤치고 들어 간데다 중국어선이 1년에 100척 넘게 기항을 한단다.

그러다보니 바나나 농사에 돼지나 먹이던 청년들이 ‘차이나드림’을 쫓아 무차별로 승선하는 모양이다. 중국도 경제 발전으로 고임금에 선원구인난이 겹쳐 이삼십년 전쯤의 우리처럼 외국인 선원들을 태우게 된 현상이다. 대나무 탑에서의 번지점프와 맨몸 물질로 하는 상어사냥으로 성인식을 치를 만큼 용맹한 기질에다 태풍과 쓰나미에도 익숙해 뱃놈 노릇은 자신 있다고 했다.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열심히 했던지 선장으로부터 계속 달고 다닐 거라는 언질도 받았다는데, 이 배에서 벌어들이는 몇 백 불 임금이 자신의 일곱 식구를 먹여 살리는 유일한 수입원이란다. 승선숫자가 많으니 나름 전통음식을 해먹는 다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닭도리탕 같은, 등판과 껍질을 벗긴 거북이 고기 찜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하며 웃었다.

심장마비로 죽은 선원은 같은 고향 친구 벌이라는데, 우리 처럼 그렇게 애통해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추장과 함께 둘러서서 춤과 노래로 명복을 빌어주는 의식을 떠올리며 그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방식은 우리와 다를 것이라 여겼다.

이 친구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어선들의 상황도 별반 다를 것 없다는 생각이 든다. 90년대 들어서며 경제발전에 따르는 인식변화로 한국선원들의 승선기피가 이어졌다. 고육지책으로 조선족 선원들을태웠다가, ‘페스카마호’의 선상반란 사건 이후 인도네시아, 베트남, 미얀마, 필리핀을 거쳐 바다구경도 못한 사람이 태반인 산악국가 네팔인들까지 태울 지경까지 왔다.

어느 한나라의 선원들을 많이 태우면 조직적인 반란이나 힘과 세력의 균형이 깨질 것을 우려해, 적절히 나라 별로 비슷한 숫자의 선원을 태울 걱정까지 해야 할 씁쓸한 상황까지 온 것이다.

어려운 선원수급상태는 그렇다 치자. 또 하나 오지랖 넓은 걱정은 선장이나 기관장 같은 고급사관들마저 3D니 4D니 힘든 선상생활에 지쳐 바다를 떠나거나 젊은 친구들이 승선을 외면한다면, 고기는 누가 잡고 원양어업강국의 갈 길은 어디일까. 당근이라면 뭐하지만 병역면제를 조건으로 하는 ‘승선근무예비역제도’ 마저 축소, 폐지 쪽으로 간다면, 현실적으로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바다를 정복하는 자 세계를 제패한다.’라는 구호는 공염불을 넘어 말장난에 그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배에 올랐던 80년대 초, 모로코나 모리타니아 같은 나라는 배를 제공하는 선주입장에서 고기잡이 귀신들인 한국인 사관들을 송출형태로 태웠다. 지금은 아마 그때 견습 항해사였던 현지인 친구들이 한국선장에게 배우고 익힌 노하우로 고기잡이를 하고 있지 싶다.

비슷한 예로 벌써부터 파키스탄 기장이 한국 비행기를 운항하듯, 머지않아 한국 어선에도 항해사로 경험을 익힌 외국인 선장을 태워야하는 경우가 오지 않을 것이라 어찌 장담할 수 있겠는가.

하역이 끝나고 다시 출항을 위해 배에 오른 연로한 도선사께서 한숨을 내쉰다. 예인선으로 끌어당겨 배를 부두에서 떼 낼 때 갑판의 바누아투 선원들 동작이 느려 부두 쪽 밧줄이 하나 터졌다.

“아이고, 이런 배들 입출항 때면 몇 만 톤 배를 몰 때 보다더 오금이 저려요. 이건 뭐 말이 통하나, 오더를 잘 따르나. 임시선장, 나 내리고도 출입항 유도 부표까지 따라 나갈 거지요? 당신마저 내려 버리면 배들 많은데서 운항규칙이나 충돌예방법도 아랑곳 않고 제 멋대로 항로를 잡아버리니…….”

바쁜 일정으로 방파제를 통과하면 도선사는 바로 다른 배에 올라야한다. 어느 정도 따라 나가 이 배가 안전거리를 확보해 항해하도록 하라는 당부의 말씀이다. 나는 그 당부를 지켰다. 멀리까지 따라 나오는 바람에 통선선장 영감님이 짜증을 냈다. 전진하는 배의 옆구리에 통선을 접선하듯 갖다 대는 기술도 신기에 가깝다. 모두 저마다의 일에 충실하려니 시간을 허비하며 고생들이 많다.

중국선장이 면세 담배 두 갑을 선물이랍시고 쥐어준다. 또 개가 짖어댄다. 다시 통선에 뛰어 내리기위해 현측에 서서 대기 중인 나에게 ‘사이먼’이 악수를 청한다. 그래, 미래의 꿈으로 바다를 택한 이 친구야, 아무쪼록 너에게 주어진 운명을 잘 다스려라. 선배는 일 년에 대여섯 번 정도로 이런 일이 있을 거라 했다. 연락하슈. 소주 값 벌이 알바자리 하나는 확실하게 굳었네.

 

Profile 하동현

부경대학교(구, 부산수산대학) 어업학과를 졸업하고 원양어선선장, 운반선 감독관을 역임하며 전세계 망망대해를 누볐다. ‘2016년 부산일보 해양문학상 우수상(중편소설)’을 수상했고 한국해양문학가 협회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하동현 작가 hdhy@hdhy.co.kr

<저작권자 © 현대해양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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