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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서 성공한 패션디자이너

기사승인 [582호] 2018.10.10  11: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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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포어장 김재곤 대표

▲ 김재곤 양포어장 대표 겸 중도매인. ⓒ박종면

[포항=현대해양 박종면 기자] “문어갑니다, 문어! 어이~ .” (딸랑딸랑) “칠만 원, 이팔(28).” “자, 참가자미 둘 갑니다. 어이~ 참가자미 둘.” (딸랑딸랑) “팔만팔천, 육육(66).” “자, 잔거(작은 것), 어이~
잔거 2만 원 오십 하나(51).”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시각, 오전 5시 20분. 경북 포항시 남구 장기면 양포리 구룡포수협 양포 활·선어 위판장에 울려 퍼지는 경매사의 우렁찬 목소리와 딸랑거리는 종소리가 항구의 어둠을 쫓고 있었다.

경매사의 진행에 맞춰 수지식으로 빠르게 응찰가를 표시하는 중도매인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상장된 다양한 선어 중 유독 아귀를 유심히 살피는 중도매인이 있었다.

구룡포수협 327번 중매인 김재곤(63) 씨. 그는 이날 아귀 700kg을 낙찰받았다. 가격이 괜찮을 땐 2톤까지 사기도 한다. 그가 아귀에 유독 관심을 보이는 이유는 그가 입이 크고 흉측한 생김새 때문에 가치없는 물고기라며 버려지던 아귀-그래서 물텀벙이라고도 불린다-를 고부가가치를 유발하는 효자 생선으로 만든 이 중 한 명이기 때문. 그는 ‘양포생아구’ 식당을 통해 다양한 아귀 요리를 탄생시킨 아귀전문가이자 ‘양포어장’ 대표이기도 하다.


중도매인이자 가공회사 대표

양포어장에서는 가자미, 조기, 장어, 아귀 등을 저차 가공하거나 반건조한 상태로 포장해 납품하는 일을 한다. 이 중 아귀가 차지하는 비중이 70~80%다. 포항 구룡포 과메기산업특구인 이곳에서 과메기보다 아귀를 훨씬 더 많이 가공, 판매하고 있는 것.

▲김재곤 대표는 매일 위판장에 나가 중도매인으로 경매에 참여한다. ⓒ박종면

김 대표는 자신의 공장에서 가공할 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10여 년 전부터 수협에 산지 중도매인으로 등록해 활동하고 있다. 그의 거래처는 개인 소비자, 수산물 도·소매업자, 아귀전문식당, 수협, 롯데슈퍼 등 굵직굵직한 유통업체와 대형마트까지 폭이 넓은 편이다.

경매가 끝나자마자 김 대표에게 와서 낙찰된 수산물을 사가는 이가 있다. “수수료 5%만 받고 파는 겁니다. 본인들은 입찰을 못하니 저한테 사는 거죠. 5~6곳은 원물 거래하고 대부분은 머리, 살 없는 부분 다 정리해서 보내달라고 합니다.”

김 대표는 처음에 중도매인인 동생의 대리인 자격으로 참여하면서 경험을 쌓았고, 2년 전부터는 수협에 거래보증금을 내고 정식 중도매인으로 등록했다. 김 대표처럼 가공업을 하는 이가 중도매인으로 직접 응찰하는 경우는 여러 장점이 있다. 무엇보다 수산물을 필요한 양만큼 싸게 구할 수 있다. 그리고 시세 등 현장 정보를 빨리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매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거래처 직원과의 현장 거래가 끝나자 양포어장 직원들이 김 대표 지시에 따라 회사 화물차에 낙찰물을 옮겨 싣는다. 위판장을 빠져 나와 31번 국도를 따라 동해안 북쪽으로 6분 가량 달리니 양포어장이 나왔다. 양포어장으로 가는 길에 김 대표가 말한다. “저기가 양포생아구 본점입니다. 제가 하다가 동생에게 물려준거죠.”

▲ 아귀찜 팩


아귀요리 특화

양포생아구(여기서는 아귀를 아구라 부른다)는 2006년부터 김 대표가 관리했던 아귀 요리 전문식당이었다. 본래동생이 운영하던 횟집이었다. 그는 서울에서 잘 나가던 패션디자이너이자 의류회사 CEO였다. 그가 고향인 포항을 떠나 서울로 향했던 것은 무려 50년 전이다. 당시 중학생이었던 그는 학업을 계속 이어갈 수 없는 가정 형편으로 무조건 공부해서 성공해야겠다는 각오로 서울로 향했다고.

서울에서 악착같이 일해 돈을 모았다. 그러다 패션디자인에 눈을 뜨고 패션디자인학원에 다니며 디자인 공부에 몰두했다. 그렇게 여러 해 고생을 거듭한 끝에 어느새 패션디자이너이자 중저가 캐주얼 브랜드 사장으로 우뚝 서있었다.

그는 40대 초반까지 꽤 괜찮았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이 잘못돼 재기를 위해 발버둥쳤지만 매번 일이 꼬였다. 막막했다. 그런던 2005년 어느날, 그는 고향을 찾았다. 고향에서 1년여 지내는 동안 어촌에서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

그는 횟집을 운영하던 막내 동생을 돕기 시작했다. 그는 ‘여기서 아귀가 많이 나는데 왜 아귀를 활용할 생각을 안 할까’ 의아했다고. 그래서 횟집일을 도우며 아귀요리를 개발하기 시작했다. 가장 압권인 것은 아귀불고기다. 아귀불고기는 고기를 구워 버섯, 미나리등을 넣고 매콤하게 버무리는 데 가장 큰 차별은 바로 불판에 있다.

“아귀찜은 보통 접시에 나오는데 얘기하다 보면 식고 비린내가 나니 이를 개선하기 위해 쉽게 타지 않는 삼중스텐철판을 구했죠. 밥을 볶아달라 하면 삼중철판에 볶아주었고, 양념도 다른 업소와 차이가 많았죠.”

▲ 영하 70도 급속 냉동기. ⓒ박종면


영하 70도 급속냉동기 갖춰

귀촌생활이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았다. 초기 2년은 적자를 기록했다. 김 대표는 선도가 좋고 맛있는 아귀가 있는데 써보시면 어떻겠느냐고 편지를 써서 아귀전문식당에 발송하는 등 거래처 확보에 집중했다. 그렇게 메뉴 개발과 영업확대로 매출을 4배까지 올릴 수 있었다.

김 대표가 본격적으로 가공업에 뛰어든 것은 2008년이다. 이 해 그는 ‘양포어장’을 창업했다. 서울 등지로 뛰어다닌 결과 다음 해에 롯데슈퍼 협력업체로 등록됐다. 그런데 양포어장이 면세업으로 등록돼 세척하고 소분해서 냉장상태로 포장해 보내주는 정도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제조시설 또한 제대로 갖추지 못하다 보니 대량주문은 외주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지난해에 또 새로운 도전을 시도했다. 2016년부터 부지를 매입하는 등 꾸준히 준비해 2017년 3월 새로운 회사를 설립했다. 이 회사는 기존의 한계를 뛰어넘어 부가가치를 높이는 고차가공 등의 과세사업을 가능케 하는 법인이다. 그는 수산업 산지 가공시설에 대한 정부 보조금(국비, 지방비)에 자부담 4억 2,000만 원을 투입해 해섭(HACCP)시설을 갖춘 수산물 가공공장을 건립했다. 여기에 영하 70도까지 냉동이 가능한 급속냉동기, 냉장냉동보관실, 냉풍건조기 등을 설치했다.


경북농민사관학교 수산업CEO마케팅 과정 졸업

그는 경북농민사관학교 수산업CEO마케팅 과정을 이수하는 등 늘 배움의 자세를 견지했다. 그는 최우수 학생으로 선발돼 경북도지사 표창을 받기도 했다. 그리고 해외연수 특전을 얻어 일본으로 수산 선진지 견학을 다녀왔다.

영포어장과 새 법인 ㈜와이피씨푸드 매출은 20억 원에 달한다. 그는 “노력하지 않으면 도태된다”고 말했다. 굴렁쇠와 같이 멈추면 쓰러진다는 것. 그는 요즘 법인의 체계를 갖추기 위해 전문가로부터 컨설팅을 받고 있다. 그가 이루고 싶은 것은 온라인을 통한 직거래 활성화다.

새벽 위판장에서 회사로 돌아온 김 대표는 당일 배송을 고속버스편으로 보내야 할 것들을 우선적으로 손질, 포장할 것을 직원에게 지시했다. 이어 1층 1차 가공실에서 낙찰 수산물을 할복한 뒤 손수 내장을 정리하는 일을 했다.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외국인 노동자 교육을 위해서다.

작업 중에 전화벨이 울린다. 어선주다. 기관 고장으로 경매시간에 늦어 상장(上場) 못했는데 수매를 해주면 좋겠다는 것. 김 대표가 크게 사업을 하고 있으니 제일 먼저 연락한 것이다. 김 대표는 직원을 바로 현장에 내보냈다. 그러는 사이 그의 스마트폰엔 문자 메시지가 쌓이고 있었다. 택배로 가공품을 받길 원하는 주문 메시지였다.

박종면 기자 hdhy@hdhy.co.kr

<저작권자 © 현대해양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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