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우리 해운산업의 경쟁력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우리 해운산업의 경쟁력
  •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 승인 2024.04.08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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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양창호 한국해운협회 상근부회장

[현대해양] 우리가 입고 쓰고 먹는 것들 대부분이 대양을 건너 해상 운송되어 우리에게 도착한 것들이다. 이와 같은 풍요로운 소비생활이 가능한 것은 약 6,800척의 선박이 전 세계 해상 공급망을 촘촘하게 연결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 무역의 80%는 바닷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지만, 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홍해 사태를 계기로 팬데믹 시기와 같은 물류 공급망 위기를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다.


공급망 위기와 방안

공급망 불안의 시작은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촉발된 장기 해운 불황으로 인해 국내의 수많은 해운선사가 시장에서 퇴출당했고, 설상가상으로 2017년 세계 5위의 컨테이너 선사이자 국내 최대 선사였던 한진해운이 글로벌 치킨게임에서 경쟁을 이기지 못하고 파산하고 말았다. 모세 혈관과 같았던 해상물류 공급의 큰 손실이 발생한 것이다.

2020년 코로나19 발발로 세계 각국의 국경이 봉쇄되며 여행, 외식 등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억눌린 욕구는 물품 소비의 폭발적인 증가로 이어졌으며, 전 세계 기업들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공장을 가동했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제한된 항만 인력은 밀려드는 화물을 소화하지 못했고, 가뜩이나 부족한 선박들이 하역을 위해 항만에서 길게는 수십 일을 대기하기 시작했다. 해상운임이 가파르게 상승하기 시작한 것은 이때부터이다. 2016년 414p였던 해상운임지수(SCFI 기준)는 2022년 6월 5,000p를 돌파했다. 공급망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문제는 선박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해외 선사들은 우리나라 중소 수출기업을 위해 달려와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해외 선사들은 운임이 높은 중국 항만에 우선 기항하면서 우리나라 기항이 줄어들고 운임도 더 높게 오르게 되었다.

이때 우리 선사들은 200척이 넘는 임시선박을 투입하며 우리 수출기업들을 위해 기꺼이 바닷길을 터주었다. 팬데믹 시기 국적 선사들이 운임이 높은 중국보다 수익성이 낮아도 수출기업의 물류대란을 해소하고자 국내 항만 기항을 지속했을 뿐만 아니라, 임시선박을 투입하여 수출기업을 지원했다.

이와 같은 성과는 한진해운 파산 이후 정부의 해운산업 재건 5개년 계획에 따라 발주된 컨테이너 선박들이 때맞춰 인도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만약, 이 시기에 정부의 해운산업에 대한 정책지원이 없었다면, 해운산업의 발전은 물론이고 제품을 수출하지 못한 수출기업들은 외국 선사들의 고운임 정책에 휘둘리며 그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했을 것이다.

과거 중동전쟁이 발생했을 때도 외국 선사들은 전쟁위험으로 중동지역의 원유 수송을 꺼렸지만, 석유 100%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산업과 안보를 위해 국적 선사는 위험을 무릅쓰고 기꺼이 중동에서 원유를 수송하였다. 우리나라 선대를 확충하고 해운산업을 지켜 나가는 것이 공급망 위기에서 우리나라 경제를 지키는 주요한 수단임을 확인한 것이다.

2023년 팬데믹이 종식되며 잠시 숨통이 트이는 듯했으나, 해상 공급망의 주요 길목 중 하나인 파나마운하가 극심한 가뭄으로 선박의 통항을 제한하며 공급망이 경색되기 시작했다. 또한 후티 반군이 홍해를 항행하는 선박을 공격하면서 전 세계 물동량의 5분의 1을 소화하는 수에즈운하마저 위험에 노출되어 세계 무역이 흔들리고 상품과 원료운송에 더 많은 차질과 가격 인상을 가져왔다.

이처럼 공급망 위기는 예측이 불가하고 치명적이다. 그렇기에 위험관리 차원에서 위기 방지 및 대응 노력이 절실하며, 공급망의 중요 부분인 해상운송에서는 국적 선대의 확대가 필요한 것이다.


톤세제도와 해운산업경쟁력

우리나라는 정부의 지원 아래 2005년 톤세제도를 도입한 이후 국적 선대가 2022년까지 2,686만 톤에서 9,922만 톤으로 3.7배나 증강되는 등 해운산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이뿐 아니라, 팬데믹 시기에 경험했던 것처럼 우리 국적 선대가 확대되면서 외국 선사들의 일방적인 운임 인상을 막아내는 역할을 하여 톤세제도 도입에 따른 국적선의 확대는 우리 수출기업의 국제경쟁력을 유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또한 톤세제도 도입으로 국적 선박이 증가한 것에 그치지 않고 국적 선박 증가에 의한 노선 확대와 부산항 기항을 증가시켜 부산항이 허브항만으로 성장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국적 중소형 컨테이너 선사들도 선박 확대 및 노선 확충 등으로 수송 능력이 확대되면서 부산항의 한·일, 한·동남아, 한·중 등 연근해 피더 화물이 2.6배나 증가하여 부산항의 허브항만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나라 해운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에 크게 기여한 톤세제도는 2005년 도입된 이래 5년마다 일몰이 연장되어 현재까지 20년 동안 반영구적으로 유지되어 오고 있다. 그러나, 자국 해운기업의 경쟁력 유지를 위해 우리보다 먼저 톤세제도를 도입한 유럽의 선진 해운국들은 톤세제도를 영구화하여 우리와 같이 자칫 해운산업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는 구조적 문제점을 내재한 일몰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톤세제도가 일몰될 경우 우리나라의 해운경쟁력은 선복량 기준으로 세계 4위에서 12위로 하락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외국 선사들과 경쟁하는 우리 선사들이 운임수준과 신조선 투자에서 국제적으로 동등한 경쟁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다가올 장기불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현행 톤세제도를 유지하는 일몰 연장이 필수적이다.

이처럼 우리 해운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전 세계 물류 공급망 위기 상황에서 수출기업을 보호하고 항만산업 등 연관산업의 발전을 위해서는 해운기업의 자체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톤세제도와 같은 선진 해운제도 유지를 통한 정책지원이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그동안 우리나라 해운산업이 선진 해운국과의 격차를 좁히기 위해 노력해 왔다면, 이제는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바탕으로 위기를 기회로 삼아 해운 강국으로 성장하여, 국가 발전에 더욱 이바지하는 산업으로 성장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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