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바다시 15. 양주동이 노래한 바다시 「海曲 3장」
한국 바다시 15. 양주동이 노래한 바다시 「海曲 3장」
  • 남송우 부경대 명예교수 · 고신대 석좌교수
  • 승인 2024.04.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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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동 '조선의 맥박'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양주동 '조선의 맥박'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현대해양] 양주동은 1932년 2월에 시집 『조선의 맥박』을 펴냈다. 이 시집은 저자가 시집 서두에서 밝혔듯이 그가 10년(1922-1932) 동안 시험한 자신의 작품을 모아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원래 영문학을 전공한 그가 최초로 펴낸 시집이며, 마지막 시집이기도 하다. 그는 이후에 한국 고전 연구에 전력을 바쳐 우리 향가를 최초로 완역한 『고가연구』를 펴내고, 고려가요를 주석한 『여요전주』를 펴내기도 했다.
현대시가 발아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이기에 조선가요의 기본적 형식인 4.4조나 시조의 기본율인 3.4조를 넘어서기 위해서 그의 초기 시에는 7.5조를 기조로 한 시편들이 많고, 그 후 점차로 여러 가지 음수율을 배합하거나 병용하고 있다. 나아가 내재율을 지향하여 자유시를 시험한 것도 있다. 이 시집은 1부 「영원한 비밀」에는 청년기의 정서를 주제로 한 서정시와 가벼운 소곡으로 구성되어 있고, 2부 「조선의 맥박」에는 사상적이고 주지적인 내용으로, 3부 「바벨 탑」 속에는 사색적이고 반성적인 경향의 시편들이 배치되어 있다. 이 시집 1부 「영원한 비밀」에 양주동은 「海曲(해곡) 3장」이란 제목으로 1925년 7월에 발표한 바다시 한 편을 선보이고 있다.

1 님 실은 배 아니언만,
   한울ㅅ 가에 돌아가는 흰돛을 보면,
   까닭없이 이 마음 그립습내다.
   호올로 바다ㅅ 가에 서서
   장산에 지는 해 바라보노라니,
   나도 모르게 밀물이 발을 적시웁내다.

2 아츰이면 해 뜨자
   바위 우에 굴캐러 가고요,

   저녁이면 옅은 물에서 소라도 줍고요.
   물결없는 밤에는
   고기잡이 배 타고 달래섬 갔다가
   안 물리면 달만 싯고 돌아오지오.

3 그대여,
   시를 쓰랴거든 바다로 오시오-
   바다같은 숨을 쉬이랴거든.
   님이여,
   사랑을 하랴거든 바다로 오시오-
   바다같은 정녈에 잠기랴거든.

   「海曲(해곡) 3장」

1장에서는 시적 화자가 처해 있는 시공간이 제시되어 있다. 배가 떠나가는 바닷가에 서서 시적 화자는 멀어져 가는 배를 통해 그리움의 감정을 드러내고 있다. 배가 드나드는 항구는 늘 이별이 있는 공간이다. 이별은 항상 그리움을 동반하기 마련이다.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며 <까닭없이 이 마음이 그립습내다>란 시적 언표는 이러한 시적 화자의 내심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그런데 2연의 내용을 보면 이 바닷가에 홀로 서서 떠나가는 배를 바라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장산에 지는 해를 바라보고 있다. 여기서 시적 화자가 서 있는 지리적 장소성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여기 나오는 장산은 시인이 그의 시에서 주로 달아놓은 장산곶인데, 이곳은 바로 황해남도(黃海南道) 용연군(龍淵郡) 장산리의 서남쪽으로 돌출한 반도의 끝을 말한다.

장산곶은 길이 21㎞, 너비 7㎞이며 동서방향으로 놓여 있다. 도(道)의 중앙을 횡단하는 산맥이 서쪽으로 길게 뻗쳐 황해 연안에 돌출한 첨단부(尖端部)로, 조선시대 아랑포영(阿郎浦營)과 조니포진(助泥浦鎭)에 수군만호(水軍萬戶)가 배치된 국방상 요지였다. 장산곶의 다른 이름으로 장연반도, 용연반도로 명명되기도 하는데, 용연은 용이 승천했다는 전설이 깃든 용소(龍沼)에서 유래한 지명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은 “용(龍)이 할퀴듯 범(虎)이 움킬 듯 다투어가며 자리 아래에서 기이한 모습을 비친다”라고 기록될 정도로 주변 경치가 수려한 곳이다. 서해로 길게 나간 반도의 중부로 불타산 줄기가 동서방향으로 뻗어있고, 불타산 줄기에는 태산봉(381m), 국사봉(288m)을 비롯한 여러 개의 산들이 있다. 북쪽 13km 지점에 몽금포(夢金浦), 남쪽 30km 지점에 구미포(九味浦)와 더불어 백사청송(白沙靑松)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장산곶 앞바다에는 고래잡이로 유명하였던 백령도(白翎島)와 대청도(大靑島), 소청도(小靑島)가 있으며, 「심청전」의 배경이 된 임당수도 장산곶 앞바다이다. 장산곶의 돌단(突端)은 대감바위(오차바위라고도 함)와 같은 해식애의 발달로 절벽이 병풍처럼 늘어서 있어 연안류와 조류의 소용돌이가 심하고 해안사고가 잦은 곳이다. 그래서 국사봉(國祀峰)의 장산곶사(長山串祠)에서 봄·가을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시적 화자는 이러한 뛰어난 경관과 많은 설화를 지닌 장산곶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발밑으로 밀려드는 바닷물을 감촉하고 있다. 2장으로 넘어오면 시적 화자가 아침과 저녁 시간에 펼치고 있는 이곳에서의 일상이 소개되고 있다. 아침에는 바위 위에 붙어 있는 굴을 캐러가고 저녁이면 소라를 줍는다. 그리고 물결 없는 밤에는 고기잡이배를 타고 달래섬으로 가서 고기를 잡는다. 고기가 안 물리면 달빛만 싣고 돌아온다고 노래하고 있다. 그런데 시인은 고기잡이하러 가는 달래섬이 월출도(月出島)라고 주를 또 달아놓고 있다. 달래섬 또는 월내도(月乃島)라 불리는 이 섬은 황해도 남단에 있다. 북위 38도 선보다 가까스로 이북에 있어서 광복 직후에는 북한에 속하였다. 한국 전쟁 때 황해도의 다른 도서들과 함께 주한 유엔군 유격부대가 점령하였다. 그러나 1953년 정전협정에 따라 철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인계하였고, 현재는 황해남도 용연군에 속해 있다. 이 섬으로 고기잡이를 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3장은 1, 2장과는 그 흐름이 다른 차원으로 시가 전개되고 있다. 여기서 두 대상을 초대하고 있다. 한 대상은 시를 쓰려는 자이며, 또 다른 대상은 사랑을 하고자 하는 자이다. 둘 다 의미가 있지만 왜 시를 쓰려는 자를 바다로 초대하고 있는지가 더 궁금해 보인다. 바다 같은 숨을 쉬는 것과 시를 쓰는 것과는 어떤 관계가 있기 때문인가? 이는 양주동의 시에 대한 인식과 관련이 있다. 양주동은 시의 형식에 있어서 운율을 중요시 했다. “시의 근본적인 문제는 시상도 시상이거니와 나는 보담 못지않게 그 형태에 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조선의 신시는 아즉 그 역사가 오래지 못하고, 그 형식에 대한 학적 연구가 없기 때문에, 지금껏 완전한 운율론 하나가 나타나지 않았다. 조선시의 운율이 근본적으로 음수율을 쫓아야 할 것은 누구나 아는 바이나, 그 음수율의 기조는 무엇이며, 또한 현대에 있어서 자유시와 음수율과 관계는 어떠한지, 이것은 아즉 충분히 규명되지 못한 문제 중의 하나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양주동은 시에 있어서의 리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 리듬의 원형을 바다가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쉼 없는 썰물과 밀물로 반복적 변주를 계속하고 있는 바다의 생리는 시가 지녀야 할 기본 리듬을 몸으로 체득할 수 있는 곳이라고 보았다. 양주동이 시를 쓰려는 자들을 향해 바다로 오라고 초대하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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