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4. 큰 굿이 열렸으니 구경가자
김준의 어촌정담 漁村情談 74. 큰 굿이 열렸으니 구경가자
  • 김준 박사
  • 승인 2024.04.16 11: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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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해안별신굿 1
거제시 죽림마을전경, 왼쪽 상단 소나무가 산신제가 열리는 상당이며, 마을 뒤쪽 바다에서 앞에 포구로 넘어오는 마을어귀에 하당이 있다.
거제시 죽림마을전경, 왼쪽 상단 소나무가 산신제가 열리는 상당이며, 마을 뒤쪽 바다에서 앞에 포구로 넘어오는 마을어귀에 하당이 있다.
죽림마을 표지석, 뒤에는 협동마을이라고 새겨져 있다.
죽림마을 표지석, 뒤에는 협동마을이라고 새겨져 있다.

[현대해양] 두 해 후, 다시 찾아갈 것 같다. 거제 작은 어촌마을에 큰 굿이 열렸다. 남해안별신굿이다. 씻김굿은 간혹 구경하러 가고, 서해 풍어제도 몇 차례 다녔다. 하지만 남해안별신굿은 거리도 있고, 시간도 맞춰야 해서 소식만 듣고 있었다. 이번에는 달랐다. 퇴직하고 나니 여유롭다. 게다가 오랜만에 통영에 지인도 만나야겠다는 생각에 앞뒤 생각할 것 없이 나섰다. 결과는 대만족이다. 그래서 2년 후 열릴 남해안별신굿을 예약한다.

거제도는 다리로 연결되어 육지와 무시로 오갈 수 있는 육지 같은 섬이다. 다리로 연결된 곳이 무슨 섬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규모로는 제주도 이어 두 번째로 크다. 거제 큰 섬과 주변에 작은 섬과 무인도가 60여 개에 이른다. 이들 중 큰 섬과 가까운 칠천도, 가조도 등은 비교적 일찍 다리가 놓였고, 황도, 산달도 등도 최근에 이어졌다. 거제는 진해만을 사이에 두고 창원, 고성, 부산과 접해 있다. 또 동쪽으로 일본 대마도와 마주하고 있다. 별신굿이 열렸던 죽림마을은 거제시 거제면 오수리에 속한다.


대모님도 어찌 못하는 고령화

“옛날에는 골목에 사람이 다닐 수 없었어. 굿이 있는 날은 이웃 동네는 말할 것도 없고 거제에서 다 왔으니까.”, 골목을 가로막고 대모가 당산굿을 준비하는 모습을 보며 노인이 건넨 말이다.

죽림마을의 총인구는 509명으로 거제시 전체 인구의 0.002%로 65세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42.4%를 차지한다. 지난 20년 사이에 고령화 비율은 20% 이상 증가했다. 어느 어촌이나 마찬가지겠지만 고령화와 인구감소는 피해 갈 수 없다. 한때 거제시를 대표하는 지역이었지만 이제 한적한 어촌일 뿐이다. 죽림마을은 조선 영조 45년(1769) 서부 죽림포방이었다. 이후 숙종 37년(1711) 거제도후부겸 김해진관 관방으로 어해정을 건립해 전선대장이 전함을 갖추고 수군을 양성했다. 그러니까 조선조에는 해안 관방의 요충지였던 셈이다. 고종 26년(1889) 죽림리로 개편되었다.

남해안 별신굿은 거제와 통영을 중심으로 한 마을굿이다. 과거에는 부산 영도에서 여수에 이르는 남해안 연안에서 별신굿이 이루어졌다. 지금은 통영 죽도, 사량도 능양마을, 거제도 죽림마을과 수산마을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죽림마을은 한 해 걸러 2년 만에 굿을 하지만, 능양마을은 10년 만에 연행을 하기도 했다. 별신굿은 매년 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특별한 해에 개최한다. 대신에 이틀에 걸쳐 굿이 진행되며, 옛날에는 사흘이나 닷새, 심지어 일주일 동안 이어지기도 했다.

죽림마을 어귀에 들어서자 커다란 교회가 안내한다. 동네로 들어가는 길은 막혔다. 차를 두고 걸어가야 한다. 아래 당산이 도로 좌우에 있어 길 위에서 굿이 펼쳐지는 탓이다. 시나위 소리를 따라 걷다 보니 우뚝 솟은 소나무 주변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죽림마을 당산은 소나무가 신체다. 윗당과 아랫당에 신령스러운 노송이 있다.

별신굿을 알리는 지모(무녀)
별신굿을 알리는 지모(무녀)

별신굿은 종합예술이다

거제에는 신청이 있었다. 넋을 불러 신을 청한다는 의미다. 당시 신청은 오늘날 종합예술학교와 같은 역할을 했다. 옛날에는 신청에서 춤, 소리, 악기 그리고 연출 심지어 음식까지 맡았다. 별신굿을 끌어가는 이는 지모(무녀)와 산이(악사)다. 남해안별신굿은 1987년 국가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초대 예능 보유자는 정모연(무녀)이고 2대는 고주옥(악사)다. 지금은 정영만 선생이 예능 보유자로 전승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정영만은 악사 중에 큰 악사를 의미하는 대사산이로 굿을 이끌고 있다.

죽림마을 별신굿은 이틀 동안 이어진다. 옛날에는 3박4일 동안 진행되기도 했다. 첫날은 ‘들맞이당산굿’으로 별신제 시작을 알린다. 마을 입구 길 양측에 마주 보는 노송이 당산이다. 옛날에는 장승이 있었지만, 지금은 대리석으로 신위를 대신하고 있다. 지하여장군 앞에 차려진 제물은 과일로 배, 사과, 천혜향, 바나나, 대추, 감이 놓였다. 생선은 가자미, 돔, 넙치가 놓였다. 그리고 맨 뒷줄에 곶감과 떡과 유과가 올려졌고 가운데 밥과 나물이 놓였다. 신위에는 명태 한 마리가 걸렸고 그 위에 사과와 배가 한 개씩 올려져 있고 쌀과 떡도 놓였다. 맞은편 지하대장군에는 배와 사과와 쌀이 올려졌고, 새끼줄에 길지를 걸어 명태를 묶어 놓았다. 상 아래에는 마른 대구가 놓인 것이 돋보인다. 밥 옆에 놓인 나물은 통영과 거제 음식으로 알려진 나물밥의 기원이라고 한다. 국물을 자작하게 해서 다양한 나물을 그릇에 담고, 가운데 두부를 올린다. 일부 식당에서 메뉴로 내놓기도 한다. 대구는 신체를 상징하며, 별신굿에서는 주민들의 한 해 액을 내치고 막는 역할을 한다. 들맞이당산굿에 앞서 ‘부정굿’을 했다. 이 굿은 굿을 하는 장소인 제청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다. 큰 명절이나 마을 대소사를 앞두고 집안을 청소하고 손님맞이를 하듯이 부정굿으로 맑게 하는 것이다.

대구를 들고 나쁜 기운을 내치고 복을 부르는 행위
대구를 들고 나쁜 기운을 내치고 복을 부르는 행위
하당에서 들맞이당산굿이 연행되고 있는 모습(좌). 들맞이당산굿이 끝나고 주민들이 한바탕 놀이판을 펼친다(우).
하당에서 들맞이당산굿이 연행되고 있는 모습(좌). 들맞이당산굿이 끝나고 주민들이 한바탕 놀이판을 펼친다(우).
지하대장군(좌). 지하여장군(우).
지하대장군(좌). 지하여장군(우).

태풍 셀마가 별신굿을 부른다

별신굿은 멈춘 것 같지만 멈추지 않는다. 그래서 2년 주기, 3년 주기 심지어 10년 주기라는 말이 나온다. 별신굿은 큰 비용과 시간이 소요 되기에 매년 연행하기 어렵다. 게다가 어장이 옛날처럼 풍요롭지 않고, 어촌 고령화로 별신굿을 전승하는 것이 쉽지 않다. 죽림마을도 마을에서 간단하게 지내기도 하고, 스님을 모시고 산신제만 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느 해엔가 더 이상 별신굿을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마지막 별신굿을 선언했다. 하지만 이후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태풍 피해가 심해지자, 굿이 복원되었다. 이유 없는 무덤 없다고, 마을에 좋지 않은 일이 이어지면 주민들은 굿을 하지 않았거나,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태풍으로 굴 양식장이 큰 피해를 보았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문화재청이나 행정의 지원도 한몫을 했고, 남해안별신굿보전회의 복원 노력도 있었다.

굿이 진행되는 동안 제청 옆에는 마을주민들이 모여서 술을 마신다. 모두 남자들이다. 여자들은 삼삼오오 주변에 모여 구경한다. 또 낯익은 연구자 몇 명도 사진을 찍고 메모하는 중이다. 일부 주민은 소리와 노래에 맞춰 춤을 추기도 한다. 흥이 나면 대모가 들고 있는 부채에 돈을 올려놓는다. 이때 지모는 건강이나 일이 잘 되기를 기원하는 덕담을 건넨다. 들맞이당산굿이 마무리될 무렵, 지모는 술을 마시던 마을 주민들을 불러 당산에 절을 하도록 한 후 대구를 들고 등을 문지르고 두들긴다. 액을 막고 내치는 행위이다.

죽림마을 별신굿 역사는 250년에 이른다. 마을굿이 그렇듯이 마을이 편안하길 바란다. 바다에 의지해야 했던 마을이라 용왕님이 주는 것이 곧 마을 성쇠는 물론 안녕도 결정했다. 뭍에서 짓는 농사와 달리 바다 농사는 예측할 수 없었다. 또 바다가 내준 것을 모아서 자연신과 마을신과 조상신, 심지어 온갖 잡신까지 나누는 잔치가 별신굿이다. 새마을사업을 앞세워 별신굿은 물론 당산굿 등을 미신으로 단정하고 금지했다. 여기에 특정 종교까지 가세하면서 농어촌에 마을굿이 급격하게 사라졌다. 더불어 펼쳐지던 풍물은 물론 전통 놀이도 자취를 감추었다. 죽림마을의 굿은 2008년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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