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13. 선박 수리 중 선원 사망 사고에 대한 선장의 형사책임
해양수산법 판례 여행 13. 선박 수리 중 선원 사망 사고에 대한 선장의 형사책임
  • 이상협 김·장 법률사무소 변호사
  • 승인 2024.04.16 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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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해양] 1. 들어가며

선장은 선박소유자의 피용자인 선박의 승무원으로서, 해원(海員)을 지휘·감독하며 선박의 운항·관리에 관하여 책임을 지는 선원을 말한다(선원법 제2조 제3호).
이에 따라 선장은 공법(公法)상으로 선박공동체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선내에 있는 사람에게 선장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명령을 할 수 있고(선원법 제6조), 그 외에 선박의 안전을 유지하기 위한 권한을 갖는다(선원법 제22조 내지 제24조 등). 나아가 선장은 사법(私法)상으로도 선박소유자를 위하여 항해에 필요한 재판상 또는 재판 외의 모든 행위를 할 권한을 갖는다(상법 제749조).
이와 같이 선장이 선내에서 갖는 지위를 고려하여, 선원이 선내에서 사고로 사망하거나 상해를 입는 경우 선장이 해당 사고에 대하여 업무상과실치사상 등의 죄책을 부담하는지가 문제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이번 글에서는 선장의 형사상 죄책 성립 여부를 세밀하게 다룬 대법원 2022. 5. 26. 선고 2021도12218 판결을 소개하고자 한다.

2. 사실관계

피고인 A는 서귀포시 선적의 액화석유가스운반선(이하 ‘이 사건 선박’이라 한다)의 선장이고, 피고인 B는 이 사건 선박의 기관장이었다.
이 사건 선박은 2018. 3. 27. 07:12경 아랍에미레이트 푸자이라항의 델타 묘박지에 정박하게 되었다. 피고인들은 위 묘박지에서 메인엔진을 정지한 후 예정된 연료수급과 메인엔진의 5번 피스톤 교체 작업을 진행하기로 하였다. 이 사건 선박의 2등 기관사로서 화물을 관리하는 업무를 담당한 피해자가 피스톤 교체 작업에 참여하였다.
기존의 5번 실린더에 있던 피스톤을 제거하고 새로 설치할 무게 약 1.5톤의 피스톤을 아래로 내리는 작업이 진행되던 중 피스톤이 아래로 추락하여 크랭크실 내부에 있던 피해자의 몸통을 충격하였다. 이로 인하여 피해자는 압착성 질식 및 가슴 손상으로 사망하였다(이하 ‘이 사건 사고’라 한다).
피고인들은 형법 제268조의 업무상과실치사죄로 기소되었고, 제1심에서는 피고인 A에 대하여 금고 6월에 집행유예 1년, 피고인 B에 대하여 금고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형을 선고하였다(제주지방법원 2020. 11. 11. 선고 2019고단1810 판결). 피고인들과 검사가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항소심에서는 피고인들과 검사의 항소를 모두 기각하는 판결을 선고하였다(제주지방법원 2021. 8. 26. 선고 2020노976 판결).

3. 대법원의 판단

피고인 A는 (1) 이 사건 사고가 발생한 작업과 관련하여 피해자를 직접 지휘·감독하였다거나 그 작업으로 인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험을 예방하기 위하여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행위자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아니한 채 그 작업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였다고 볼 수도 없는 이상 업무상과실을 인정할 수 없으며, (2) 설령 일련의 조치 과정에 관련 규정을 따르지 않은 잘못이 일부 있더라도 그러한 규정은 다른 선박의 항로 방해 위험성 등 외부적 위험이나 기상 악화 시 선박 자체의 작업 안전성 등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부과된 행정적 조치·의무에 관한 것이어서 이를 게을리 하였다고 하여 그에 관한 행정적인 책임을 넘어 형사상의 과실까지 당연히 인정된다고 단정할 수 없고, (3) 나아가 위와 같은 일련의 조치 과정에서 인정된 사정과 이 사건 사고 사이의 상당인과관계에 대하여도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없이 확신을 가지게 할 정도로 증명이 이루어졌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근거로, 피고인 A에 대해서는 무죄 취지로 원심판결을 파기환송하였다.

4. 검토

대상 판결에서는 피스톤 교체 작업 중 2등 기관사가 사망한 사고에 대하여 이 사건 선박의 선장(피고인 A)과 기관장(피고인 B)이 형법 제268조에 따라 업무상과실치사죄를 부담하는지가 문제되었다.

이 중 기관장은 피스톤 교체 작업을 총괄하는 직책에 있는 자로서 챔버 내부에 작업자 등이 있는지 이를 확인하지 않은 채 만연히 피스톤을 하강한 업무상과실로 인하여 사망 사고가 발생한 점에는 다툼의 여지가 적었던 반면, 선장은 메인엔진 피스톤 교체 작업에 대해 선주에 위성전화로 구두보고만 하고, 관계 항만 당국에 허가받지 않은 상태에서 기관장의 작업 요청을 승인한 것에 대하여 업무상 과실 내지 사망사고와의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되었다.
그런데 문제된 선사의 HSEQ (Health, Safety, Environment & Quality Management System) 매뉴얼 상으로는 선장이 선주로부터 구두승인을 받아 작업을 진행한 뒤 사후적으로 구체적인 작업계획이나 기상상황 등에 대하여 서면보고 및 승인을 받는 방식도 금지되지 않았다.
또한 메인엔진 정비 작업 전에 항만 당국의 허가를 받도록 한 매뉴얼 규정은 행정적 조치·의무에 관한 것이어서 그 위반만으로 형사적으로 업무상 과실까지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고 인정되었다.
나아가 선장이 선주로부터 작업에 대한 구두승인을 받은 것이나 항만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은 점이 이 사건 사고 발생에 영향을 미쳤다거나 그 가능성을 높였다고 평가하기에 부족한 점에서 선장의 행위와 이 사건 사고 사이에 상당인과관계도 인정하기 어렵다.
더욱이 선장은 당시 피해자에게 피스톤 교체 작업에 참여할 것을 직접 지시한 바가 없고, 안전성이 확보되지 아니한 채 그 작업 과정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을 알면서도 이를 방치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는 점에서 선장의 지휘·감독 상의 과실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였던 사안으로 보인다.
위와 같이 대법원은 선장이 선박과 선원에 대한 총괄적인 책임자의 지위에 있다는 점을 근거로 만연히 선장에게 형사상 죄책을 묻기보다는, 이 사건 사고에 대하여 선장이 업무상 과실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러한 과실과 사고 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었는지를 면밀히 판단하여 선장에게 무죄 취지로 판결을 선고하였는바, 이러한 대법원의 입장은 향후 선내에서 발생하는 유사한 사고에 있어 선장의 형사상 죄책 유무를 판단함에 있어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 것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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