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들의 국과수…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고래들의 국과수…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
  • 변인수 기자
  • 승인 2018.08.07 16: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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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다른 일 터 사랑…개인·국가의 발전 동시 충족

[현대해양 변인수 기자] 2015년 2월, 남해군 인근해역에 설치된 홍합 양식장에 대형 고래가 걸려 구조가 필요하다는 연락이 왔다.

국립수산과학원 고래연구센터는 부산아쿠아리움 구조팀과 함께 출동해 오후 2시 경부터 구조작업에 돌입했다. 

발견된 고래는 양식장 한가운데 걸려있어 배가 접근하기 쉽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고래 꼬리부분에 두꺼운 줄들이 여러 겹 엉켜 있었다. 13~14미터에 이르는 고래가 몸을 계속 움직여 구조대의 안전도 확보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여러 차례 다가섰다 물러서기를 반복한 끝에 구조팀은 엉켜있는 줄들을 절단해 나갈 수 있었다. 어렵게 로프 세 가닥을 잘라낼 수 있었으나 시간은 자정을 넘기게 되고 시야확보가 어려워져 구조작업은 다음날로 미뤄졌다. 고래도 제풀에 움직임이 잦아들었고, 구조팀의 안전도 중요했기 때문.

다음날 구조작업을 재개하고자 현장에 갔을 때, 고래는 이미 남은 줄 하나를 끊고 탈출한 후였다. 혹시나 주변 사체를 찾아보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무사히 탈출한 것이다.

고래연구센터와 부산아쿠아리움 구조팀이 긴수염고래를 구조하고 있다.
남해 홍합 양식장 로프에 걸린 긴수염고래

 

그물에 걸린 고래는 ‘긴수염고래’

당시 양식장에 걸렸던 긴수염고래는 고래 중에서도 좀 특별한 어종이라는 고래연구센터 측의 설명이다.

세계적인 멸종위기종으로 북태평양에 약 250여 마리만 있는 것으로 알려진 긴수염고래는 과거 우리바다에 많이 살았었는데 1800년대 중후반 미국과 일본 등이 남획에 개체수가 급감했다. 1974년에 포항 호미곶 부근에서 포획된 이후로 처음인 것이다. 이것은 거의 서울 남산에 시베리아 호랑이가 나타난 것과도 견줄 수 있다고.

특히, 머리 주위에 ‘경결’이라고 하는 티눈 같은 피부 조직이 있는데 개체마다 모두 달라서 개체식별이 가능하기 때문에 고래연구소는 사진을 찍어 데이터베이스로 등록했다. 연구소는 그해 미국 샌디에고에서 개최되는 국제포경위원회 과학위원회에 이번 구조 활동 사례를 보고하고 학계에 널리 알렸다. 구조과정에서 채집한 피부시료는 유전자 분석, 지방산 분석, 호르몬 분석 같은 의미있는 생물학적 연구 자료로 활용했다.

 

우리 연안의 고래 수, 7만 여 마리

고래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동물로 포유동물에 속하며, 약 2,500만년 전 인간보다 먼저 지구상에 출현해 해양생태계 먹이사슬의 정점을 차지해왔다. 현재 약 83종 이상이 서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한국에서 출현하는 것은 모두 35종으로 수염고래류 6종과, 나머지 이빨고래류 29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2012년 고래연구센터는 우리나라 연안의 고래 분포를 총 6만9,700여마리로 추정했다. 동해와 서해에 분포하는 밍크고래는 각각 1,600마리, 동해 중남부 해역에 분포하는 참돌고래는 3만5,000마리, 서해와 남해에 분포하는 상괭이는 3만 마리, 제주 해역에만 분포하는 희귀종인 남방큰돌고래는 100여 마리 정도 남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중 남방큰돌고래는 제주도에만 서식하고 있는 특별한 종이다. 기존에는 전혀 관심을 받지 못했기에 큰돌고래로 불렸는데, 연구를 더 해보니 남방큰돌고래가 다른 종인 것을 알게 됐던 것.

멸종위기종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참고래 표본제작을 위한 골격

제돌·삼팔·춘삼·태산·복순·대포·금등이 자연으로

올해 1월에는 남방큰돌고래 개체수가 고래연구소의 조사 결과 총 117마리가 관찰되어, 최근 5년 사이 다소 늘어났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그동안 많은 수의 돌고래들이 어업인의 그물에 걸려 식용으로 유통되거나 불법 생포된 후 수족관에서 사육되며 돌고래쇼 등에 이용돼 왔다. 정부와 서울시는 그동안 인간의 손에 사육되던 남방큰돌고래 7마리를 야생으로 방류했다. 고래들이 자연으로 돌아가게 된 것은 고래연구센터의 역할이 컸다.

고래연구센터는 서울시대공원 측에 방류를 할 수 있는 과학적 근거를 제공했고, 방류 이후 생존방법 등도 제시했다. 이에 지난 2012년 서울시장이 최종 방류 결정을 내리게 된다. 2013년에는 제돌·삼팔·춘삼이가, 2015년에는 태산·복순이가, 2017년에는 대포·금등이가 자유를 찾았다.

 

견학 온 아이들에게 고래를 설명하는 손호선 연구관

자발적 연구문화…개인·조직의 발전 동시충족

19세기 후반, 유럽을 중심으로 수산자원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공유되면서 고래 보호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현재 한국의 고래잡이는 1986년 국제포경위원회(IWC) 가입 이후 전면 금지 상태다. 포경의 허용 유무에 따라 고래연구도 들쑥날쑥 했다. 

주요어업이 아니었으므로 큰 관심대상이 되지 못했던 고래는 1979년 미국 측의 권유로 우리나라가 포경위원회에 가입하고 그때부터 쿼터를 받아 포경이 이뤄지게 되면서 일시적으로 연구가 활발해졌다. 그러나 1986년 포경위원회의 상업적 포경이 전면 금지되면서 고래연구도 그때부터 멈춰버렸다. 그럼에도 포경이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은 가졌었다. 1999년부터는 본격적이고 체계적인 고래연구가 재개됐다.

2004년에 설립된 고래연구센터는 지금까지 우리바다에 서식하는 주요 고래류에 대한 개체 수 추정, 혼획 고래류 모니터링과 유전자 분석 및 등록, 주요 돌고래의 생물학적 특성, 어업과의 마찰 문제, 돌고래 구조 및 순치 사육 등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왔다. 게다가 인공위성추적 장치, 안정 동위원소 분석, 호르몬분석 등 다양한 연구방법을 동원해 연구범위를 확대해왔다.

“우리 연구센터는 국가 정책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소입니다. 그런데 연구자들의 태도가 능동적이고 자발적이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열정과 만족도가 높아서 보기 드물게 개인의 자아실현과 국가의 발전이 동시에 충족되는 일터라 느껴집니다.”

고래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는 손호선 연구관은 국내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고래 전문가다. 그의 공직 생활은 우리나라 고래연구 역사와 같이 한다. 2000년대 중반 본소에서 기획·행정업무를 맡았던 것 이외에는 고래연구 초창기부터 지금까지 이 분야에서 기간으로나 열정으로나 손 연구관을 따를 사람이 없다. 손 연구관은 좋아하는 고래 연구를 정년까지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고래의 신원조회를 담당하는 국과수, 고래연구센터

고래연구센터는 우리나라 연근해와 제주해역에서 매년 2~3회에 걸쳐목시(目視)조사(Sighting Survey)를 실시한다. 배를 타고 정해진 조사선(Survey Line)을 항해하면서, 조사원이 눈으로 관찰하면서 고래를 발견하여, 발견 위치, 시간, 기상, 고래의 종류 등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다. 

목시조사 외에도 요즘 센터가 주목하는 새로운 연구 방법이 있다. 바닷속 음향기기를 이용해 고래연구를 다각화할 계획을 두고 있다. 그래서 올해 음향기기 전문가를 영입했다. 고래전문가에게 음향을 가르치는 것보다 음향기기전문가에게 고래를 가르치는 것이 쉬울 것이라는 판단 하에 음향전문가에게 고래를 가르치는 것이 쉬울 것이라는 판단하에서였다.

이 밖에도 고래연구센터는 고래에 관한 통계자료 관리 및 DNA 분석을 통해 정부 정책 수립의 기초자료를 제공한다. 어떤 고래가 많이 잡히고 보호어종으로 지정할 것인지. 그래야 혼획을 줄일 수 있고, 생태계 특성 또한 파악해나갈 수 있다.

또, 해경, 수협 등 유관기관과의 업무협조를 통해 혼획된 고래의 샘플을 분석·보관한다. 고래의 유전자 샘플을 분석하고, 유통증명서를 보관·관리하는 것이다. 개인의 신원을 보관하고, 조회할 수 있게 하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같은 역할로 고래들의 국과수라 할 수 있겠다.

지난 3월, 센터는 뒤뜰에 묻은 고래 시체를 파냈다. 멸종위기종으로 학술적 가치가 높은 참고래의 실물골격 표본을 제작하기 위해서다. 센터는 2014년 5월 전북 군산시 해상에서 혼획된 길이 14m의 참고래를 고래연구센터 뒤편 땅속에 묻고, 4년간 기다렸다.

고래연구센터는 참고래 골격 발굴 이후 세척과 건조, 파손부위 복원 등의 과정을 거쳐 올해 하반기경 골격 표본을 완성하고, 두개골 형태 등의 특질을 살피는 구조연구를 진행하여 향후 참고래 계군 분석 등에 활용할 계획이다.

고래연구센터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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